왜 Binomo인가?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3월 11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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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는 메시지 노출량에 기반하여 마케팅 계획을 세울 것이고 후자는 소비자가 언제 메시지를 연결(공유)하는지, 소비자와의 신뢰 관계를 어떻게 쌓아갈 것인지, 오히려 ‘과정’을 고민할 것이다. 그 결과 사업자는 사용자들과 더 긴밀히 상호작용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신뢰를 쌓게 된다 (이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원한다면 ‘아마존은 왜 소셜 미디어인가?’라는 포스트로 여행하기를 권한다).

왜 Binomo인가?

외형변화를 원하지 않는 여성분들도, 작은 턱의 외형을 좋게 변화시키기 원하는 여성분들도 모두 치료 가능합니다.

여성 코골이·수면무호흡증

외형 변화 없는 기도확장(재건)수술, 숨수면클리닉에서 가능합니다.

여성분들의 코골이는 남성 코골이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여성 수면무호흡은, 같은 구조의 남성과 비교했을 때 증상이 덜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속적인 코골이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남성은 비만형의 코골이가 많지만 여성의 경우 작은 턱, 좁은 턱 등 하악 구조 이상의 골격 구조 이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상·하악 부위 문제 중 특히, 혀 뒤쪽을 충분히 넓힐 수 있는 기도확장(재건)수술과
비수술적 치료 중 교과서적인 치료인 구강내장치, 양압기 등을 모두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에는 양악수술, 급속 상악교정수술 등 얼굴의 골격 수술 후 내원을 하는 여성 환자분들도 많습니다.
젊은 여성분들의 경우에는 양압기 치료를 선택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구강내장치의 치료도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오래된 치료법인 양악, 삼악확장수술만 효과적인 수술은 아닙니다.

코골이·수면무호흡증 수술의 선택 시에도 대부분 여성의 경우 외형 변화가 없거나,
작은 턱의 모양을 좋게 만드는 수술을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숨수면클리닉에서는 이 모두가 가능하며,
다수의 성공적인 치료 사례를 RDI 5 미만의 수술치유 사례를 포함하여 남·여 별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여성분들의 코골이는 남성 코골이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여성 수면무호흡은, 같은 구조의 남성과 비교했을 때 증상이 덜 합니다.그래서 오히려 지속적인 코골이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남성은 비만형의 코골이가 많지만 여성의 경우 작은 턱, 좁은 턱 등 하악 구조 이상의 골격 구조 이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상·하악 부위 문제 중 특히, 혀 뒤쪽을 충분히 넓힐 수 있는 기도확장(재건)수술과비수술적 치료 중 교과서적인 치료인 구강내장치, 양압기 등을 모두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에는 양악수술, 급속 상악교정수술 등 얼굴의 골격 수술 후 내원을 하는 여성 환자분들도 많습니다.젊은 여성분들의 경우에는 양압기 치료를 선택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구강내장치의 치료도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하지만 이런 경우 오래된 치료법인 양악, 삼악확장수술만 효과적인 수술은 아닙니다.

코골이·수면무호흡증 수술의 선택 시에도 대부분 여성의 경우 외형 변화가 없거나,작은 턱의 모양을 좋게 만드는 수술을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숨수면클리닉에서는 이 모두가 가능하며, 다수의 성공적인 치료 사례를 RDI 5 미만의 수술치유 사례를 포함하여 남·여 별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수술 전후 사진

36세 기혼 여성, 주위에 시선이 따가웠던 심한 코골이 주소로 내원하였으며, 이전 작은 턱으로 하악 보형물 삽입 상태였습니다.

수술 전에 본 3DCT 소견으로는 경구개 뒤쪽 18mm, 연구개 뒤쪽 1.6mm, 혀 뒤쪽 4.9mm로 매우 좁은 기도(숨구멍)입니다.

수술 후에는 경구개 뒤쪽 26.1mm, 연구개 뒤쪽 6.7mm, 혀 뒤쪽 12mm로 정상적인 크기로 기도가 확장되었습니다.

치유(Cure)를 위한 끊임없는 연구,

숨수면클리닉의 기록은 계속됩니다.

국내 최다 공개된 수술치유 사례, 치유(Cure)를 위한 끊임없는 연구와 경험이 숨수면클리닉의 경쟁력이자 차이입니다.
수술은 수만개. 하지만 RDI까지 공개된 수술치유 사례는 없다구요? (2022년 1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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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간 OTT 플랫폼 구독을 정지했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영상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점이 나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해 시도 때도 없이 ‘뭐 볼만한 거 없을까’라며 틈만 나면 들락거리는 빌미를 제공한 탓이다. 읽어야 할 책과 써야 할 글이 넘쳤던 어느날 과감히 구독 정지를 했다. 그랬던 내가 몇개월 만에 재구독을 왜 Binomo인가? 했다. 이유는 바로 ‘우영우’ 때문이다.

이 이상하고 신비로운 우영우에게 우리는 왜 끌리고 있는 걸까? 6회 만에 대형 스타 한명 없이 신생 채널의 이름을 궁금하게 하고, 전 세계적인 OTT 플랫폼에서 1등을 구가하는 드라마가 되었다. 이런 시점에 드라마의 타이틀이자 주인공인 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해 집중 파헤쳐보자.

우영우 변호사의 이름은 ‘우영우’다. 앞으로 해도 우영우, 뒤로 해도 우영우다. 더불어 예시로 친절하게 ‘기러기’, ‘토마토’ 등이 있다고까지 이야기해준다. 이름은 한 사람을 표현하는 대표 명사이자 세상에 태어나 가장 처음 타인에게 받는 선물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인격체가 형성되기 이전, 세상이라는 ‘때’가 묻기 전부터 우리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많은 문학작품에서는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성인이 된 뒤 여러 사정으로 개명할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의미는 지속된다.

그런 이름이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같다는 것은 장난스러운 말장난 같지만, 그 사람의 앞과 뒤가 같다는 의미를 은근히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일까? 이름을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같은 우영우는 참 솔직하다. ‘앞과 뒤’가 너무 똑같아서 도리어 문제가 될 때도 잦다.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 줄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다. 어둡고 힘든 현실의 나는 얼마든지 ‘삭제’하거나 ‘편집’할 수 있다.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은 부분만 오리고 잘라서 드러낸다. 그래서 이런 책 제목까지 등장하지 않았나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정지우. 2020, 한겨레출판사)

자유주의 국가에서 자신이 가진 매력을 잘 발산하는 것은 뛰어난 재능 중 하나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 차고 넘치다 보니 은근히 ‘피로도’가 쌓인다는 것이다. 더불어 현실의 모습과 SNS상의 모습에 심한 괴리감을 느끼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런 현상을 돌이켜볼 때 ‘편집’된 자신의 모습이 매번 좋은 효과를 낳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우영우는 자신을 편집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한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는 사돈의 팔촌까지 세세하게 파악하면서 정작 자신에 대한 질문에는 묵묵부답일 때가 많다. 일례로 글쓰기 수업에서 자신의 장점을 쓰라는 글감을 제안하면 100명 중 90명 이상은 머뭇거린다. 자신의 장점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대다수다.

우영우는 자신에게 단점으로 보일 수 있는 ‘자폐’에 대해 상대에게 농담까지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정도 되면 앞과 뒤가 같다 못해 투명하다.

우영우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다.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수성도 있겠지만 우영우는 사건을 사건으로만 바라본다. 그 안에 있는 감정은 빼고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변호사들이 보지 못한 더 속 깊은 사실을 잘 찾아내 사건을 더 명확하게 해결한다.

우영우는 사건을 처음 대할 때 자료를 충분하게 살핀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실에 집중한다.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없다. 증거와 자료를 통해 유추할 뿐이다. ‘짐작’과 ‘유추’는 의미가 상반된 단어다.왜 Binomo인가?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대부분은 이 미루어 짐작하는 것으로 인해 곤궁에 처한다. 타인의 감정을 나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그것이 진짜이고 전부인 양 착각한다. 막상 그를 다시 만나 이 부분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다 보면 대개 혼자만의 ‘해석’인 경우가 허다하다. 팩트에 집중하지 않고 감정에 집중한 탓이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감정’이다. 감정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억울했던 마음도 일정 시간이 되면 조금 작아지고, 뜨거웠던 열정도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감정이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감정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감정은 본질을 흐리게 하거나 아예 다른 이야기로 전개하는 속성이 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감정을 빼고 그 사안을 바라보자. 그렇게 바라보아야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풀린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 무엇보다 앞과 뒤가 같은 그녀를 우리가 좋아하는 이유는 순수한 사람에 대한 열망이 아닐까 한다.

순수한 사람이 그리운 날이다. 자신을 포장하기에 급급한 사람들 틈에서 그녀가 독보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세상의 지독한 때가 그녀에게 아직 묻지 않아서이다.

누군가를 대가 없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 감정 없이 그 사람 그 자체로만 바라봐주는 사람, 우리는 지금 그런 우영우 같은 사람이 필요하고 만나고 싶은가보다.

인간무늬연마소

본인이 프로이트의 주제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인슈타인이 프로이트에게 쓴 편지에서와 같이 파괴적인 공격성이 인간에게 내재해있으며 이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입니다 - “ 모든 인간은 마음속에 증오와 파괴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 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하였다 .( 프로이트 저 / 김석희 옮김 , 문명속의 불만 , “ 왜 전쟁인가 ?” 에 수록된 아인슈타인의 편지 , 350 쪽 )

I. 지그문트 프로이트 – 인간의 갈등과 폭력

사람들 간의 이해 상충은 일반적으로 폭력을 사용하여 해결합니다 .( 프로이트 저 / 김석희 옮김 , 문명속의 불만 , “ 왜 전쟁인가 ?” 353 쪽 )

사람의 근력이 증가하면 곧 도구 사용으로 대체됩니다 . 더 나은 무기를 가지고 있거나 더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 무기의 도입으로 지적 우월성이 원시 근력을 대신하기 시작합니다 . 이 목적은 폭력이 상대방을 영구적으로 제거할 때 , 즉 그들을 죽일 때 가장 철저하게 달성됩니다 . 게다가 적을 죽이는 것은 나중에 언급하게될 파괴적 충동을 만족시킵니다 .(353 쪽 )

II. 지그문트 프로이트 - 공동체의 권력으로서의 법

우리는 법이 공동체의 힘이라는 것을 압니다 . 여기에서의 차이점은 더 이상 개인의 폭력이 아니라 공동체의 폭력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354 쪽 ) 법은 통치자들에 의해 그리고 통치자들을 위해 제정되며 지배 아래 놓인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권리가 충분히 부여되지 않고 있습니다 .(356 쪽 ) 지배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제한을 뛰어 넘으려 합니다 . 그리고 억압받은 구성원은 더 많은 권력을 얻으려고 끊임없는 노력합니다 . 따라서 우리는 공동체 내에서도 이해 상충의 폭력적인 해결을 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56 쪽 )

전쟁의 안전한 예방은 모든 이해 상충에 대해 왜 Binomo인가? 판결이 내려지는 중앙 권력의 수립에 국민이 동의할 때만 가능합니다 . 여기에 두 가지 요구가 분명히 결합되어 있는데 , 이를 위한 더 높은 권위가 부여되어야하고 필요한 힘이 주어져야한다는 것입니다 . 하나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국제 연맹은 그러한 권위로 의도되었지만 다른 조건은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358 쪽 )

르네상스 시대에 충분히 강력했던 기독교 공동체 의식은 크고 작은 기독교 국가들이 서로 전쟁에서 술탄의 도움을 청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 우리 시대에도 이러한 통합력을 가질 것이란 기대가 없습니다 . 법이 원래 야만적인 폭력이며 오늘날에도 폭력의 지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예측입니다 .(359 쪽 )

III. 지그문트 프로이트 – 두 종류의 인간의 충동

우리의 왜 Binomo인가? 가설에 의하면 인간의 충동은 두 종류입니다 . 즉 , 보존하고 통합을 추구하는 충동과 파괴하고 죽이고 싶은 충동입니다 .(360 쪽 )

인력과 척력의 양극성과도 근본적인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361 쪽 ) 여기에 윤리적인 선악판단을 너무 서둘러 도입해서는 안 됩니다 . 이 두 충동은 똑같이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 생명 현상들은 이 둘의 상호 작용과 반작용에서 생성됩니다 . 항상 다른 쪽의 특정 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목표를 수정하거나 특정 상황에서 목표 달성이 가능하게 됩니다 . 행동은 하나의 충동에만 고립적으로 지배되어 나타날 수 없습니다 . 예를 들어 , 자기 보존의 충동은 확실히 에로틱한 충동이지만 , 그 목적을 달성하려면 공격성을 지녀야 합니다 . 사물을 향한 사랑 충동도 사물을 붙잡으려면 소유하기 위해 지배 충동의 도움이 추가적으로 필요합니다 . 오랫동안 우리는 두 가지 유형의 충동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발현될 경우 따로 분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361 쪽 )

인간의 행동은 하나의 본능적 충동에만 지배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 본능적 충동자체도 이미 에로스와 파괴성의 복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 원칙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 여러 동기가 결합되어야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해 집니다 .(361 쪽 )

죽음의 충동이 특수 기관의 도움을 받아 물체에 대항하여 바깥쪽으로 향한다는 점에서 파괴적인 충동이 됩니다 . 살아있는 존재는 말하자면 이질적인 것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보존합니다 . 그러나 죽음 충동의 일부는 생명체 내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 우리는 이 파괴적 충동의 내면으로부터 많은 정상적이거나 병리적인 현상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 우리는 그러한 공격성의 내면화를 양심이 생성되는 기원으로 설명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 이 과정이 너무 큰 규모로 진행되는 것은 전혀 사소한 문제로 끝나지 않게되며 직접적으로 건강에도 해롭습니다 . 반대로 이 충동이 외부 세계를 파괴하는 쪽으로 돌려지면 생명체는 구원를 받고 그 결과는 유익한 효과를 갖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이것은 우리가 싸우고 있는 추악하고 위험한 모든 노력들을 생물학적으로 정당화해 줄 것입니다 .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저항보다 자연에 더 가깝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363 쪽 )

결론은 인간의 공격적인 성향을 제거하려고 애써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363) 러시아 공산주의지들도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물질적 욕구의 충족을 보장하고 지역 사회 참여자들 사이의 평등을 확립함으로써 인간의 공격성을 사라지게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그것은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들이 지지자들을 모으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중 적지 않는 중요성을 가진 것은 국외자들에 대한 증오입니다 .(364 쪽 )

IV. 지그문트 프로이트 – 충동의 승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공격적인 충동을 전쟁으로 발산할 필요가 없도록 그 충동의 방향을 다른데로 돌리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364 쪽 )

전쟁에 나가려는 의지가 파괴적인 충동의 결과라면 , 이 충동의 반대자인 에로스로 하여금 거기에 대항하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364 쪽 ) 사람들 사이의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여 전쟁에 대응해야 합니다 . 이러한 감정적인 유대로는 두 가지 유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첫째 , 성적인 목표는 없지만 사랑의 대상이 있는 관계와 같습니다 . (364 쪽 )

두 번째 유대는 동일화입니다 . 사람들이 어떤 관심사를 공유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 이 감정의 일치 , 즉 동일화를 낳습니다 . 그리고 인간의 사회구조는 대부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365 쪽 )

우리가 전쟁에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우리가 달리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평화주의를 전제로 하면 , 그 다음에 우리 태도를 정당화할 논거를 찾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367 쪽 ) 상기 내용은 아인슈타인에게 보내는 프로이트의 답장을 요약한 것입니다 .

V. 지그문트 프로이트 – 궤바디스 ?

프로이트는 이 문제를 이 책에 포함된 자신의 다른 저술에서 상세히 다루었는데 , 결론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습니다 .

“ 인류에게 숙명적인 문제는 , 문명 발달이 인간의 공격 본능과 자기 파괴 본능에 따른 공동 생활의 방해를 억누르는데 성공할 것이냐 , 성공한다면 어느 정도나 성공할 것이냐 하는 문제인 듯 싶다 .

하지만 어느 쪽이 성공하고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지를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 프로이트 저 / 김석희 옮김 , 문명속의 불만 , “ 문명속의 불만 ” – 프로이트의 논문의 342-343 쪽 참조 )

VI. 프로이트 재해석 - 죽음의 본능과 문화 / 문명

“ 죽음 본능의 개념 제기 이전의 프로이트에게는 인간의 심적인 역동성은 오로지 쾌락원칙에 의해 지배되는 에로스로 설명하였다 . 그러나 반복되는 강박 같은 무의식적 본능은 쾌락원칙을 넘어서는 다른 차원의 충동이다 .”( 황선길 , ’ 프로이트 (1856-1939) - 리비도의 억압과 문명 ‘ 우공함 강의자료 , 김광석 편집 https://m.blog.naver.com/qhrwkqgksdlq/221506039074 . 밑줄 김덕환 )

“ 전쟁은 나쁜 것이다 .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 나가는 그 현장이 지옥 자체라는걸 겪어보지 않아도 머리로 안다 .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전쟁이 주는 쾌락 또한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다 . 머리론 평화를 외치면서 전쟁의 대체제인 게임에 열광하는 모습에서 그 본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 우리 모두는 전쟁광인 것을 전쟁을 즐기거나 전쟁의 자식들을 즐기고 있는 것을 거기서부터 출발이다 ” ( 댓글 박민수 , 한글 유튜브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16QtoGk7ddM ” 천재의 편지교환 : 왜 전쟁은 끊이지 않는가 ?“ )

”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의 삶은 문명의 억압적 부담이 본능 만족 및 인류에 대한 승화된 사랑의 구현과 대체로 균형을 이루는 상태의 삶이다 . 그러나 문명은 인간의 본능적 충동을 필연적으로 방해할 수 밖에 없고 , 이런 방해가 낳은 죄의식은 모든 문명이 치려야하는 대가이기 때문에 , 자연과 문명의 화해는 불가능하다 . 프로이트가 문명에 대한 불만을 집단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혀 품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 김석희 역자 해설 , 프로이트 지음 , 김석희 옮김 , 문명속의 불만 , 열린책들 2020, 398 쪽 )

“ 루소가 그러했듯이 프로이트는 문화 속에서 행복이나 발전을 보았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처한 억압과 불행을 성찰하고자 했다 . ‘ 불안 ’ 과 ‘ 불만 ’ 이라는 프로이트 개념의 재조명은 한 개인이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문화라는 공동의 보편적 유대를 구성해오는 과정 안에 억누르고 잊으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불행의 상처가 하나의 ‘ 외상 (trauma)’ 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 이러한 프로이트의 관점은 불규칙하게 드러나는 불안과 불만이야말로 직접적인 국가권력의 행사 보다 더 깊숙이 우리 내면 안에 은밀하고 강고하게 행사된 권력의 재현임을 이해하게 해 준다 . 나아가 기존의 문화 연구와 관련해서도 , 한 개인의 정체성과 문화의 관련이 단순히 상호 발전적으로만 조응될 수 없으며 국가나 인종 , 민족 , 젠더 , 계층이라는 각각의 문화적 경계가 형성되는 과정 안에도 그리 단일하거나 분명치 않은 심리적인 동요와 도착 (perversions) 의 복합적이고 내면화된 매카니즘이 있음을 주목하게 해 줌으로써 , 향후 문화연구의 지평을 ‘ 정신분석의 문화정치학 ’ 으로 넓히는 일정한 근거를 제공해 준다 .”

( 박주원 , 자아와 문화의 정체성 , 불안과 불만의 문화정치학 - 프로이트 (S. Freud) 정신분석학의 정치사상적 접근 , 21 세기정치학회보 제 29 집 1 호 , 2019 년 3 월 , 논문초록 )

[ 나가며 – 갈등 해결을 위한 행동 심리치료 요법 ]

인간의 갈등 문제를 행동심리 치료 기법에 대입해 보고자 합니다 .

a) 갈등은 사람들 사이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 갈등은 완전히 , 부분적으로 또는 불행히도 전혀 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해결된 갈등은 서로 좋은 경험을 갖게 된 결과 사람들을 더 가깝게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

b) 갈등을 해결에는 긍정적 ( 건설적 !) 인 방법과 부정적 ( 파괴적 !) 인 방법이 있습니다 .

c) 갈등 해결을 위한 행동 심리치료 요법에서는 갈등 원인을 찾는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첫 번째 그 시작 단계입니다 .( 갈등조정 역량 함양을 위한 국제 워크숍 , 박일연 교수 호남신학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 한국갈등조정학회 , 청소년화해놀이터협의회 2021 년 1 월 5 일 발표 강사 앙겔리카 그라우어 (Dr. Angelika Grauer) Transfer 연구소 , 강의 자료 , 김덕환 번역 / 통역 )

브랜드 이야기#1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으로 한국의 서점가를 휩쓴 마이클 샌델의 바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한번 「왜 도덕인가?」를 주제로 하여 다시 우리 앞에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보지 못했지만 왜 도덕인가를 읽고나니 그의 모든 저서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삶속에 살면서 우리의 행동 대부분이 돈과 연결되는 일들을 하고 있다. 이동을 하더라도 '차비'가 들고 인터넷을 하든, 전화를 하든 '요금'을 내야한다. 이러한 삶속에서 우리가 알고는 있었지만 지나쳐야했던 문제들과 누군가는 해결해주리라 생각했던 문제들에 대해서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때가 된 것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논리를 경제적인 논리에 맞춰서 생각하지는 않았었는지, 돈을 앞세우면 뭐든 해결 가능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크게 세가지 파트로 나뉘어진다.

Part 1. 도덕이란 무엇인가? - 공정한 시민사회를 위하여
Part 2. 도덕적 가치의 원류를 찾아서
Part 3. 자유와 공동체를 말하다 -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선택할 수 왜 Binomo인가? 있는 능력, '자유'

이 파트에서 챕터형식으로 하여 하위 목차들이 여러개 존재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한 내용이 있어 그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공공기관이 상업화돼가는 현상

1995년, 캐나다 기마경찰대는 기마경관 이미지를 전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디즈니에게 팔았다. 그리고 디즈니는 그 대가로 연간 250만달러를 지불했다. 이러한 거래에 대해 캐나다 국민들은 캐나다 경찰이 신성한 국가 상징을 미국의 대기업에 돈을 받고 팔았다며 비난하는 일이 있었다. 캐나다는 디즈니와 계약하여 캐나다의 기마경찰대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전세계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기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것이다.

정부기관은 본래 임무와 마케팅을 가르는 구분선이 모호해지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체신부 장관 마빈러니언은 "우리는 시장중심의 그리고 고객 친화적인 정부 조직이 되어 국민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라고 말했으나 국민은 국민이지 고객이 아니다. 국민은 공공의 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이 정치와 상업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즉, 애국심과 브랜드 충성도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마케팅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정부기관이 이러한 입장을 가진 사례를 많이 보았다. 우리나라의 여러 지방도시들도 브랜드 슬로건을 만들고 이러한 슬로건과 지역 특산품과 관광상품을 잘 융합하여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방자체가 하나의 상품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 사람들의 의견은 여럿으로 갈릴 수 있다. 지역이 하나로 뭉쳐서 지역과 그곳의 주민들이 더욱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나쁜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상업적인 활동이 없을 경우엔 그 지역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볼때 아무것도 없다면 정말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스포츠팀은 한 지역에 터를 잡고 그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성장해왔다. 특히 같은 좌석에 앉아 한 분위기 속에서 핫도그를 먹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도 자본이 투입되면서 VIP좌석이 생겨나 관람자들의 계급을 구분짓기 시작했고, 빅스타의 영입으로 더욱 활기를 띤 스포츠 구단은 해당 지역장에게 막대한 지원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지역주민의 단합과 애정 및 열정을 볼 수 있었던 장소에서 벗어나 돈이 앞서게 된다면 지역 정부기관에서 써야할 돈들이 이러한 스포츠에 더 집약적으로 모여들게 되고, 사회복지 및 시설, 교육에 왜 Binomo인가? 사용되야 할 돈이 그만큼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릴적 동네형들이 축구하는 것을 보기만 하면서도 즐겼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아파트에 살았던 본인은 아파트별로 팀을 나눠 축구하는 경우에는 더욱 우리 아파트팀이 이기길 원했었다. 과거의 스포츠들이 모두 이런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선수든 아니든 모두가 즐기고 이기면 기쁨을 나누는 매개체였는데 지금은 자본주의에 따라 많이 변형되어왔다.

이 책의 후반부로 갈 수록 내용은 더욱 심층적으로 들어간다. Part 1.은 고개를 끄떡끄떡하면서 한장한장 넘길 수 있으나 후반으로 가면서는 읽는 속도와 이해하는 속도가 조금씩은 느려진다. 아무래도 그동안 이런 책들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버드대 정치철학 교수님이 쓴 글인데 한번 읽고 다 이해하고 받아들인 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특히나 한번 번역을 거친 글이기 때문에 그 어려움은 더할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저자가 저술한 '정의란 무엇인가'도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꼽힌다.

책은 최소한 세번은 읽어보아야 한다. 그래의 저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 해석이 아닌 저자를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도 않았던 본인에게 이책은 마치 호수 가운데 떨어진 돌처럼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으면 도덕은 점차 잊혀질 수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 정치철학 교수 마이클 샌델의 『왜 도덕인가』. 한국사회에 '정의' 논쟁을 촉발시키면서 신선한 돌풍을 일으킨 베스트셀러 의 저자가 돌아왔다. 한국사회에서 근복적이고.

왜 오가닉 미디어인가? (Why Organic Media?)

왜 오가닉 미디어인가? (Why Organic Media?)

미디어는 인터넷 현상을 기점으로 갑자기 네트워크의 유형으로 변모한 것이 아니다. 미디어의 속성 자체는 본래 ‘네트워크’를 내포해왔다. 다만 이것이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기술적 요소들과 적극적으로 결합되면서 현상적으로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곧 미디어라는 관점에서 보면 미디어는 태생적으로 네트워크라 할 왜 Binomo인가? 수 있다.

다만 지금 인터넷 공간에서는 그 네트워크가 살아서 움직이고 스스로 진화한다는 것이 놀랍고 다른 점이다. 우리가 새로운 미디어를 새로운 틀걸이에서 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인터넷 시장은, 미디어는, 네트워크는 어떤 원리로 진화하고 있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오가닉 미디어는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한 미디어 프레임워크이다. 앞으로 이어지는 글들을 통해 분야별로 하나씩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여기서는 그에 앞서 오가닉 미디어를 정의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선 전통적 미디어와 오가닉 미디어를 비교하고 오가닉 미디어의 두가지 속성을 알아보도록 하자.

미디어의 정의와 새로운 현상의 출현

전통적으로 미디어(media)란 송수신자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도구 또는 왜 Binomo인가? 환경을 말한다. 인간의 언어와 몸짓을 비롯하여 편지, 전화 등 일대일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모두 미디어이며 책, 신문,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 일대다 커뮤니케이션의 미디어도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서비스들이 이에 속하는데, 메신저나 SNS 등 커뮤니케이션을 주요 기능으로 하는 서비스 뿐만 아니라 검색, 커머스 등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작동하는 모든 서비스도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하는 점은 미디어가 만드는 네트워크이다. 편지, 전화부터 TV, 라디오 등의 대중매체, 그리고 인터넷 기반 서비스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미디어들은 콘텐츠를 전달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송수신자들의 관계를 반영하고 만들게 된다. 그리고 미디어가 만드는 관계 네트워크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면 미디어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대중 매체는 오랫동안 일방향의 일대다 네트워크로 이 사회를 지배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과 함께 미디어의 새로운 네트워크 형태를 만나게 된다. 왠지 통제되지 않고 항상 진화하고 사용자를 거치지 않으면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대체 어떤 미디어인가?

전통 미디어와 왜 Binomo인가? 오가닉 미디어의 비교

우리는 ‘스스로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네트워크’에 기반한 미디어를 오가닉 미디어 (organic media)라고 정의한다. 기존의 미디어 개념은 ‘메시지의 전달(방식)’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왔다. 반면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인터넷 공간 자체가 실제로 거대한 소셜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있는 현상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만 해당하지 않는다. 상거래, 검색 등 분야에 관계없이 현상은 동일하다(구체적으로 어떤 현상들인지 앞으로 이어질 포스트에서 다뤄질 것이다). 기계적으로 정리되거나 통제되지 않고 그 영향범위는 순식간에 커지기도 한다. 이것을 과연 메시지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

TraditionalMedia-OrganicMedia

위의 도표는 오가닉 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기본적 특성을 전통 미디어와 비교한 것이다. 미디어를 정의하는 관점과 콘텐츠의 생명력 측면에서 다른 점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오가닉 미디어는 그 자체가 네트워크라는 점, 그리고 유기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진화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미디어와 구별된다고 하겠다. 두 가지의 속성을 하나씩 살펴보자.

오가닉 미디어는 네트워크(Network)이다

미디어를 ‘메시지 전달 도구’로 보는 것과 ‘네트워크’ 자체로 보는 것은 현상에 대한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낳는다. 미디어 개념이 사용자 – 메시지 – 사용자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네트워크와 그 속성 쪽으로 중심 축을 옮겨 오면 인터넷 시장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전통 미디어 관점에서 보면 인터넷 시장에 메시지(제품)를 어떻게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것인가에 집중하게 된다. 반면 왜 Binomo인가? 네트워크 관점에서 미디어를 보면 사용자와 제품 또는 정보 제공자, 광고주, 마케터 등이 모두 미디어의 구성원(노드)이다. 따라서 메시지 전달보다는 어떻게 노드들이 상호작용하고 관계를 형성하는지 그 메커니즘과 네트워크의 작동 원리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전자는 메시지 노출량에 기반하여 마케팅 계획을 세울 것이고 후자는 소비자가 언제 메시지를 연결(공유)하는지, 소비자와의 신뢰 관계를 어떻게 쌓아갈 것인지, 오히려 ‘과정’을 고민할 것이다. 그 결과 사업자는 사용자들과 더 긴밀히 상호작용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신뢰를 쌓게 된다 (이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원한다면 ‘아마존은 왜 소셜 미디어인가?’라는 포스트로 여행하기를 권한다).

오가닉 미디어는 유기적(Organic)이다

콘텐츠의 생명력 측면에서 보면 전통 미디어와 오가닉 미디어의 특성은 극명하게 구분된다. 전통 미디어에서는 콘텐츠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마지막 단계이다. 말을 내뱉는 순간, 출판, 발행, 방송의 형식으로 콘텐츠가 전달되는 순간 미디어의 역할은 끝난 것이다. 반면 오가닉 미디어에서는 콘텐츠가 전달된 순간부터가 중요해진다. 한번 게재된 콘텐츠는 사람들의 활동에 따라 끊임없이 연결되고 진화할 수 있는 잠재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는 ‘낚시’글을 반복적으로 작성하는 언론사들이나 포털처럼 메시지의 진열과 노출에 집중하게 된다. 후자의 경우는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연결하게 함으로써 콘텐츠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데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오가닉 미디어가 스스로 자생력을 지닌 유기적인 네트워크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소비하고 연결하고 공유하고 생산하는 행위가 기반이 된다. 오가닉 미디어는 사용자들의 다양한 참여 방식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미디어이다. 페이스북도 지금의 SNS가 되기까지 수도 없이 서비스 모델이 변화해왔다. 오가닉 미디어에서는 처음부터 정해지는 것이 없다. 성장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오가닉 미디어는 노드들의 활동을 통해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미디어이다.

오가닉 미디어는 노드들의 활동을 통해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미디어이다.

지금까지 오가닉 미디어가 무슨 뜻인지 간단히 살펴보았다. 몇줄의 텍스트로 ‘스스로 진화하는 네트워크’ 가 무엇인지 단번에 설명할 수 있는 비법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재화의 가치, 비즈니스 모델, 미디어의 작동 방법이 송두리째 변화하고 있다. 눈을 뜨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실행전략이 아니다. 그 변화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이해와 고민이 없으면 진화할 수가 없고, 지금 시장은 진화하지 않으면 죽는 시장이다. 앞으로 이어질 포스트들을 통해 주제별로 하나하나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고 해결책을 공유하도록 하겠다. 여러분들의 많은 코멘트와 피드백을 아울러 부탁드린다.

(* 이 글은 ‘오가닉 미디어’를 출간하면서 프롤로그로 2014년 2월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업데이트된 이야기는 ‘진화하지 않으면 죽는다(프롤로그)‘를 참고하세요)

  • 다음 포스트: 퍼블리케이션이 매개이다
  • 관련 포스트: 미디어의 3가지 구성요소

December 13th 2012
Dr. Agnès Jiyoung YUN
Organic Media Lab Founder & CEO

email: [email protected]
facebook: yun.agnes
Twitter: @agnes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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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thoughts on “ 왜 오가닉 미디어인가? (Why Organic Media?) ”

이미 미디어 자체가 네트워크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가닉이 연상되지만, 이 글을 읽은 저에게는 Publication과 Birth가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느껴지네요. 바로 Publication이 관심이라는 것을 먹이로 하는 콘텐츠를 낳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ublication이 더 이상 콘텐츠의 ‘완성’ 또는 ‘끝’이 아니라 네트워크에 새롭게 생성된 seed의 개념이므로 이준혁님이 언급하신 관점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반면, 이렇게 생성된 콘텐츠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 콘텐츠로 이뤄진 네트워크 안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진화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보여집니다. 즉, 콘텐츠가 생성됨과 동시에 사용자와 콘텐츠 네트워크 자체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고, 그들의 관계를 ‘매개’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오가닉 미디어랩의 포스트들은 이준혁님과 저를 매개하고 있고, 그 매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네트워크 형성이나 연결로 이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겠지요.^^)

이런 매개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정보재가 어떻게 기존보다 훨씬 더 증폭된 형태로 연결된 시장에서 가치를 생성하게 되는지도 설명 가능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포스트들을 통해 부분별로 보다 상세히 언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준혁님: 오가닉 미디어랩 ‘홈’의 소개 글을 수정하여 주제별로 3개의 포스트로 나누었습니다. (소개글이 너무 길다는 원성에 따라…) 우리의 대화는 3번째 포스트 ‘매개는 네트워크의 확장이다 (http://organicmedialab.com/2013/01/28/mediation-extends-network/)’와 연결될 것 같습니다. 참고를 부탁드립니다 ^^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네요. 단순히 블로그+소셜댓글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요. 진열과 노출에 의존하는 메커니즘을 네트워크로 바꾼다는 것은 매력적인 목표 같습니다. 파이팅~! 잘 읽고 갑니다.

네 맞습니다. 지금까지 조각 조각 존재하던 단서들을 하나로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여져요. 신성철님처럼 업계에서 많은 경험을 하신 분들의 코멘트와 피드백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퍼블리케이션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으니 저야 말로 책이 같은 맥락에서 작업 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

Jongeun YOU / Claire (@kons_jongeun) says:

이로써 우린 열린 사회로 한발한발 나가는 걸까요 ? .. ( 어렵지만 열심히 읽어 보겠어요. ㅎㅎ )

오! 귀한 독자가 오셨네요 🙂 네, 물론이에요. 브랜드 홍보 회사를 오랜 시간 경영하시면서 미디어의 변화를 가장 크게 실감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많은 비판과 피드백을 부탁드립니다 ^^ 저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재미있는 시작입니다.
약간 뜬금없는 소리지만…서두를 읽으면서 요새 뜨는 ‘로가닉’이란 말도 떠오르네요.

한 포스팅을 읽고, 생각나는 것들을 쓰게 되는지라 다음 포스팅에 이미 언급된 내용을 뒷북때릴 수도 있으니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포스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과연 우리가 널리 쓰는 ‘미디어’란 단어를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약간 삐딱한 시선일수도 있지만 전통 미디어는 송수신자간 커뮤니케이션보다는 일방적인 전달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오랫동안 이용되어 왔었죠. 그러다보니 미디어크라시(Mediacracy), 미디어크랫(Mediacrat) 따위의 말도 나왔구요…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용어가 조금은 생소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지배력甲) 미디어라 할 수 있는 언론들이 애서 기피해온 용어니까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 하면 일종의 interactive tool로 오해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이거야 다들 잘 아는 이야기일테니 잡설이었다 넘겨주시고, 미디어 정의의 관점과 콘텐츠의 생명력에 대해 한가지 여쭙고자 합니다.

미디어 정의의 관점에서 전통 미디어는 ‘전송 방식’ 오가닉 미디어는 ‘네트워크’라고 표현하셨는데 이 정리가 동의어도 반의어도 아닌 느낌이라 한방에 와닿지가 않았습니다. 차라리 ‘일대일 혹은 일대다 전송 방식’, ‘다대다 네트워크 전송(순환) 방식’ 등으로 비슷한 연장선상에서 더 비교되게 표현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리고 콘텐츠의 생명력 부분에서…전통 미디어 콘텐츠는 ‘자생력이 없다’고 하셨는데, 부족하지만 제 생각에는 전통 미디어의 컨텐츠 전달은 네트워크와는 달리 일방향적 흐름이 주축을 이루긴 하지만 그 흐름의 하부 갈래가 많아지고 피드백 고리가 돌다보면 결국은 상위 흐름이나 컨텐츠 발원지로 다시 연결된다고 봅니다.

특히 전통 미디어의 경우 오가닉보다는 바이럴(Viral) 전파 & 본문에 언급하신 전달력의 영향력이 큰데, 이런 것들이 전통 미디어 컨텐츠의 성장에 생명력을 부여해온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답성, 쌍방성이 없고 재생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 자생력이 없다고 보기는 조금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데…제가 확장성과 생명력을 혼동하고 있는 것일까요?

괜히 트집 잡는 것 같은 글이 되었는데 그게 또 너무 길기까지 하네요. ㅡㅜ;;
잘 지내시고 또 긁으러 오겠습니다. ㅎㅎ

으…저희 회사 서버 세팅때문인지 댓글 남기기 완전 힘들어요. ㅋ

반갑습니다! 주옥같은 의견을 주셨네요. 주신 의견을 댓글에 간추리기는 어렵겠지만 답변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1. 미디어 정의: ‘송수신자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라는 정의는 말씀하신 ‘일방향 (혹은 일방적) 메시지 전달 도구, 일대일, 일대다, 다대다’ 등을 포괄한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관점에 따라 일방향 도구, Interactive Tool 등이 모두 맞는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어원적으로 ‘mediare’가 ‘관계’를 내포하고 있고 여기에 기술적 방식들이 더해지면서 다양하게 진화해온 미디어 역사를 잠시 떠올려봅니다.) 이 부분은 ‘미디어의 역사’에서 다시 다루게 됩니다.

2. 전통미디어와 오가닉 미디어의 관점 비교: (위의 1번과 같은 정의로 인해 결국) 미디어에 대한 관점이 ‘메시지 전달 방식 (종이에 출판하거나 브로드캐스팅 방식으로 전달하는 등)’에 촛점이 맞춰져 있어 오가닉 미디어 현상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심 축을 ‘네트워크’ 자체로 옮겨오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3. 네, 콘텐츠의 주목도는 메시지 전송이 완료된 이후, 사람들의 대화, 신문 기사가 다시 TV 콘텐츠화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언급하신 부분이 대중매체의 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존의 미디어는 최초 콘텐츠 생산자 (저자, 제작자, 기자 등)가 메시지를 한번 전달하면 미디어의 역할이 끝납니다. 지금까지의 출판, 왜 Binomo인가? 방송 등이 모두 ‘1회’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는 콘텐츠의 생명이 연장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제, 작년, 역사적 사건에 관심을 계속 가진다고 해서 그 콘텐츠 자체가 진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오가닉 미디어에서는 그 ‘다음 단계’부터가 오히려 중요해집니다 (관련 포스트: 끝이 곧 시작이다). 즉, 최초 콘텐츠를 전달받은 사람들의 반응 (반응이 없으면 바로 사라질 것이고, 있다면 링크, 댓글, 복사, 검색, 구매 등의 행위로 이어지겠지요. 관련 포스트: 퍼블리케이션이 매개이다)에 따라 콘텐츠가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 블로그 포스트도 현재 URZil님의 댓글을 통해 변화/진화하고 있고, 그렇게 정리된 내용은 웹북 출판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 댓글을 본문에 왜 Binomo인가? 포함시켜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또 그 웹북에 대한 반응이 종이책으로 출판되는 콘텐츠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페이스북 등 이 블로그에 붙어있는 버튼을 통해 외부 사이트로 지속적으로 연결이 되면서 이 콘텐츠의 형태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오가닉 미디어에서는 이런 반응이 메시지 전송 단계와 별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든 것이 잠재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흔적 (데이터)이 남고 구조화될 수 있기에 최초 콘텐츠 자체의 진화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였습니다 ^^

쓰고 보니 저 또한 엄청 긴 댓글이 되었네요:) 위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다른 포스트들에서 언급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입니다. 여기서 자주 뵐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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